나는 벼락치기의 달인이었다. 하기 싫은 공부를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결국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되어서야 허겁지겁 급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곤 했다.
그래도 정해진 과제가 있고 시험이 있던 학생 시절때는 이 방법이 통했다. 어찌됐거나 시험을 앞두고는 공부를 하긴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나에게 공부하라 떠밀지 않는 사회에 나오게 되니, 이러다간 공부를 인생 끝날때까지 미루게 될 판이었다.
특히나 개발 공부는 정말정말 하기 싫었다. 회사에서도 개발하느라 지끈지끈 머리 아팠는데 퇴근하고나서도 개발 공부라니! 정말 진저리가 쳐졌다.
개발자가 되고 처음 6개월정도야 뭐 적응하느라 바빴으니 따로 개발 관련 공부를 안해도 어쩔 수 없는 셈 쳤다. 그러나 슬슬 회사에도 적응하고 일에도 적응해가면서 느낀 점은, 회사 일만 해서는 더 큰 기회를 잡기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완전 신입때야 주어진 일 하기에도 급급했지만, 점점 기본적이고 쉬운 일들을 처리하는 것은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니 회사에서는 점점 나에게 조금씩 어려운 일들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막상 그 일들을 자신있게 나서서 맡기에는 나에게 큰 그림을 이해하는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적인 부분들은 이제 대충 알지만, 전반적으로 시스템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파악하는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모르는 개념이 많으니 아무리 시니어가 설명을 해줘도 반은 못 알아 들을 수 밖에. 그때부터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 이거 미리 공부 안해놓으면 나중에 나 정말 큰일 나겠구나.
그래서 회사 일 이외에 개발 관련 책을 보고 공부를 하려고 여러번 시도를 했으나 무참히 실패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의욕 넘쳐서 했으나 그 이후에 기가 막히게 의욕이 증발해버리곤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고 나의 위기 의식은 점점 켜졌으며 그것이 온전히 나의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더 일이 하기 싫고 회사가 싫어졌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다. 회사가 싫다고 당장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렇게 스트레스 받느니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노력과 끈기와 습관과 공부에 대한 것과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책들을 엄청나게 읽어 나갔다. 그리고 책들에서 말하는 방법들을 나에게 맞게 요리조리 바꿔서 적용해보려 했다.
그 결과 내가 시도하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꾸준히 공부를 했을 때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내가 꾸준히 개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어떻게 될까. 분명 1년만 지나도 나는 주변의 다른 공부 안하는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많은 지식과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아는 것이 많으니 새로운 일이 주어져도 그 일을 해결하는데 쓸 수 있는 도구도 많아질테고, 그러면 큰 스트레스 없이 해결책을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고, 그러면 괴롭지 않고 오히려 재밌게 일을 할 수 있겠지. 재밌게 일을 하면 성과도 좋을 가능성이 클테고, 그럼 회사에서 인정받을거고, 그게 또 뿌듯하고 기쁠거고, 그러면 그 힘으로 또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선순환을 돌며 나는 폭풍처럼 성장할테고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커져서 자존감도 올라갈 것이다!
이렇게 상상하다보면 역시 지금 책 한쪽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2. 공부 목표는 정말정말 아주 작게 잡는다.
절대로 일주일안에 500쪽짜리 개발책 한권을 다 읽겠다는 야심찬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는다. 목표는 아주 작게, 누구나 시도해볼만하게 잡는다. 나는 매일 체크리스트에 해당 일을 했는지 안했는지 체크하는데, 개발 책 한쪽이라도 읽으면 그냥 무조건 체크다. 한쪽이어도 어쨌든 한건 한거니까. 나에게로의 부담을 최소화 시켰다. 그러지 않으면 내 안의 내가 곧바로 반기를 들고 이런식이면 때려친다고 고래고래 항변할걸 알기에.
그냥 인정해야 한다. 나는 공부하기 싫어하고 게으르고 인내심이 쥐똥만큼 밖에 없다는 사람이란걸. 이런 나를 달래가며 꾸준히 하려면 절대로 무리하면 안된다. 조금만 해도 진짜 잘했다며 스스로 폭풍칭찬을 해줘야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물론 이렇게 공부하면 속도야 그닥 빠르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해야 1년후에도 여전히 0이 아닌 0.3정도만큼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3.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분야부터 공부한다.
아무래도 필요한것부터 공부하면 바로 당장이라도 실무에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게 되고, 그럼 공부한 내용도 머릿속에 더 깊이 남게 될뿐더러 뿌듯함이 배가 된다. 책에서 말했던게 이런거였구나 라는걸 실전을 통해 좀 더 확실히 알게 되니 더 재밌기도 하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껴야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의욕이 생기는 것 같다. 그동안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들이나 컨셉들을 '아하, 이게 이런걸 말하는 거였구나!'하며 깨닫게 될 때, 뭐라도 좀 더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타오른다.
4. 목표를 작게 잡는 대신, 매일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건 나의 경우인데, 나는 '평일에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에 쉬자' 같은게 안맞는다. 주말 이틀을 맘껏 쉬어버리면 월요일이 더더욱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의 목표를 크게 잡지 않는 대신 주말에도 딱히 스킵하지 않고 왠만하면 매일매일해서 아예 습관화하려고 한다. (물론 다른 일이 있거나 계획이 있으면 쿨하게 스킵한다.) 경험상 빠지지 않고 매일 하는게 습관으로 만들기가 훨씬 쉽고, 일단 습관으로 만들어 놓으면 계속 해나가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정말 하기 싫은 날에도 '일단 책 한쪽만이라도 읽자'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아직은 나도 공부 습관이 제대로 잡혀있다고 할 수 없고 내공도 얕기에, 틈만 나면 '아, 피곤한데 오늘은 하지 말까' 혹은 '며칠 열심히 했는데 오늘은 좀 쉴까' 하는 달콤한 생각들이 든다. 그렇다고 안해버리면 내일의 내가 더 힘들걸 알기에 결국 오늘도 한숨 푸욱 쉬며 책을 펼쳐들고 오늘의 공부를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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