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지 6개월이 넘어가고 1년이 다되어가니 일도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쉬엄쉬엄 일을 해도 늘 어느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고, 팀원들에게 일 열심히 잘하는걸로 칭찬도 많이 받았다. 연봉도 약간이지만 올려주기도 했고, 이래저래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한켠에 이직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개발 위주의 IT회사가 아닌 다른 분야의 회사다보니 좀 답답했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이것저것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는데, 그런면에서 좀 한계가 느껴졌다. 회사 차원에서 개발자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해주는 것도 거의 없었고, 개발적인걸 더 배워도 모자랄판에 회사 도메인에 대해서 배워야 하는 시간들이 뭔가 좀 아까웠다.
이 회사에서 더 성장하고 인정받으려면 GIS쪽을 더 알아야 할 것 같았는데, 난 그쪽 분야를 더 공부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일하면서는 그 분야를 몰라 헤매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 분야를 공부하는데 시간을 쏟게 되는데 이 연결 고리를 끊고 싶었다.
두번째, 스케일이 좀 더 크고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회사로 가고 싶었다. 현재 만드는 서비스의 주 고객들은 회사 내부의 GIS 엔지니어들이었다. GIS 엔지니어들이 실제 외부 고객들과 일하면서 이용하는 툴과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보니 스케일에 대해 크게 신경써야 할 일이 없었고, 설사 간혹 시스템이 다운된다고 해도 엄청 큰일이 나는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큰 그림을 보게 되거나 시스템 성능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그저 기능 하나하나 추가하는데에만 온 신경을 쏟곤 했다. 그러다보니 그냥 프론트엔드 수정은 금방금방 할 수 있게 됐지만 큰 흐름을 보는건 여전히 약했다.
세번째, 더 개발을 잘하고 개발에 진심인 사람들과 일하고 싶었다. 우리 팀에도 시니어들이 있긴했지만 시니어들은 주로 각종 회의나 시스템 디자인 회의로 바빴다. 같이 일하게 되는 사람들은 정말 몇 안되는 주니어/미드 개발자들, 그리고 인턴들이었다.
나도 아직 부족한데 나에게 피드백을 줄 사람은 별로 없고 내가 피드백을 줘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내가 짠 코드가 잘 짠 코드인지 긴가민가하며 코드 리뷰를 보내도 매번 별 피드백 없이 그냥 승인되곤 해서, 내 코드가 정말 괜찮은건지 아니면 코드 리뷰를 대충 하는건지 알길이 없었다.
사실 회사 코드도 잘 정돈되어 짜져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과 UI 로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코드의 흐름을 파악하는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 이슈를 닫기 위해 급히 땜빵된 코드들도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물론 코드를 깔끔하게 하는게 쉽지 않은건 알지만, 뭐랄까 좀 더 코드를 신경쓰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네번째, 회사가 이용하는 API와 도메인 데이터들로 인한 한계점들. GIS쪽은 ArcGIS라는 회사가 꽉 잡고 있었고, 우린 그들이 제공하는 API를 이용해 우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뭐 선택의 폭이랄게 없었다. 우리가 유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능들도 대부분 다 ArcGIS가 제공하는 기능들에 한해서였다.
그쪽에서 기능이 제공되지 않으면 아무리 유저가 원해도 우리가 해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ArcGIS API 문서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문서만 믿고 하다가 한참 삽질한 경우도 많았고, API 자체의 버그도 꽤나 많았어서 QA팀이 버그를 찾아내도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고대로 다시 ArcGIS쪽으로 버그 리포트를 하는 것뿐이기도 했다.
또 GIS 데이터 자체의 특성 때문에 자동화를 하지 못하고 수동으로 일일이 해야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버전을 배포하는 날이면, 배포를 도맡아하던 시니어 개발자는 수동으로 베타에 넣었던 데이터들을 다시 또 수동으로 감마에 넣고, QA팀이 테스트를 끝내면 다시 또 수동으로 Prod에 넣어야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실수도 발생하고, 그런 날이면 그 개발자와 QA팀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밤까지 이슈를 확인하고 해결하고 배포를 하곤 했다. 2주에 한번 발생하는 배포 날마다 전쟁이라도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나중에 이런 일들을 도맡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마지막, 돈. 정말 이 돈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기가 참 힘든 것 같다. 주니어치곤 만족스러운 연봉으로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주 큰 회사가 아니다보니 앞으로 연봉을 얼마나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일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닌데 돈을 막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니 점차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갔다.
남편의 월급과 내 월급이 같은 날에 나란히 들어왔는데, 남편의 월급 앞에선 내 월급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도 더 많이 벌고 싶어졌다. 더군다나 나의 꿈은 가능한 이른 은퇴인데 지금 월급으로는 한 60살까지 아주 열심히 끈질기게 회사를 다녀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1년쯤 지나면 본격적으로 회사를 알아보고 지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동안은 감을 잃지 않게 꾸준히 하루에 알고리즘 한문제씩은 풀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예상보다 빠르게 이직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아마존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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