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밴쿠버로 떠나와 첫 개발자 취업에 성공했다. 2012년 처음 개발자로 발을 들였다가 떠난 후, 약 8년만에 다시 개발자로서의 취업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개발자. 인생에서 긴 싸이클을 한 번 끝낸 기분이다.
내 인생에 앞으로는 또 어떤 길이 펼쳐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렇게 쭉 개발자로 살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일을 찾아 떠날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일단은 내가 단기 목표로 세웠던 하나의 목적지에 잘 안착한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개발자로 일을 시작한지 벌써 1년하고도 4개월 정도가 흘렀다. 막상 개발로 일을 해보니 이또한 쉽지 않음을 절절히 깨달았고, 부족한 나의 실력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아, 역시 나에게 개발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수천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가지 느낀 점은, 싫다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름의 힘듦과 고충이 있을 수밖에. 모든 것이 나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완벽한 일이란, 슬프게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요즘에도 개발을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버그 하나 고치려고 몇시간씩 디버깅을 해야 할때나, 남들 컴퓨터에서는 잘만 되는 빌드가 내 컴퓨터에서는 도무지 왜 안되는지 몰라 에러 로그를 구글링하며 끝도 없이 씨름할때나, 이미 몇년 전에 회사를 떠난 자가 남긴 코드 속에서 허우적 거릴때면, 이놈의 개발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단비같은 순간들이 있다. 디버깅하는데 하루종일 걸릴것 같았던 버그가 한시간만에 찾아질 때, 설마 이건가? 싶은 생각으로 시도해본게 진짜 해결책이었을 때,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고민이었던 문제에 대한 방법이 기가막히게 떠올랐을 때. 이럴 때면 뿌듯함과 짜릿함 및 '나 혹시 천재 아냐?'라는 자만심이 또 하늘을 찌른다.
생각해보면 일하면서 이렇게 다이나믹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일이 또 얼마나 있겠냐 싶다. 이것도 개발의 장점이라면 장점 아닐까. 지루할 틈이 없다는거, 시간 가는줄을 모르겠는거. 요즘은 그렇게 개발의 좋은 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애정을 쏟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최소한 향후 몇년간은 함께 해야할테니 이왕이면 사이 좋게 지내야지.
어쨌거나 나는 이제 개발자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과가 멋있어 보여 어쩌다 이과를 갔고, 수능 점수 맞추느라 어쩌다 컴공을 갔고, 힘들었던 첫 회사의 개발팀을 피해 어쩌다 UX로 진로를 바꿨지만, 결국 어쩌다 오게 된 캐나다에서, 어쩌다보니 다시 개발자로 살고 있다. 하나하나가 그저 우연 같아 보이고 충동적인 선택 같았지만, 어찌됐든 그 모든 하나하나가 징검다리가 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고 나는 지금의 내가 썩 나쁘지 않다.
앞으로도 나는 또 이렇게 우연 같은 선택들을 충동적으로 해나가겠지. 그래도 내 마음의 소리를 충실히 따라가는 그 길이 나는 기대가 된다. 그건 오롯이 나의 의지와 나의 선택에 의한 나만의 길이니까.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든 나는 나의 모든 발자취들을 사랑하겠노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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