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과정이 끝나고 얼마 안되어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취업에 도움줄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단다. 학원 안에 자기만의 부스를 만들어서, 학원이 초대한 회사들에게 자기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자리였다.
분명 좋은 기회였다. 그렇지만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일단 학원 생활이 나에겐 너무 정신적으로 힘겨웠던지라, 교육과정이 다 끝나고나니 두번 다시 학원엔 발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또한 UX과정을 제대로 공부하며 '이게 정말 나에게 맞는 길일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삼성에서 내가 했던 UX는 전체 UX과정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화면을 구성하고 플로우를 짜는 일은 재밌었지만, 유저 인터뷰, 각종 시장 조사, 클라이언트와의 컨셉 회의 등등 그 외의 다른 일들을 학원에서 경험하고나니 정말 내가 이 모든걸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정답이 없는 UX의 특성상 말로 내 의견과 컨셉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영어에 자신감이 완전 꺾인 것도 내 주저함에 한 몫 했다. 한국에 있었을때에도 다른 기 쎄신 분들에게 많이 눌려 살았는데, 여기서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영어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복잡한 머리로 며칠을 허송세월 보내고 있을때, 링크드인을 통해 메세지가 하나 왔다.
"우리는 삼성 4K 티비로 구동할 수 있는 가상 현실을 개발 중이야."
??? 뭔 소리야... 앞뒤 문맥없이 다짜고짜 이렇게 왔길래 뭐지? 잘못 보냈나? 싶어서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같은 사람에게 메세지가 왔다.
"XX학원(내가 다녔던 UX학원) 행사에 갔었는데 너에게 관심이 있어. 우리 리드 UX 디자이너도 한국인이고, 우리는 삼성 4K 티비로 구동할 수 있는 가상 현실을 개발 중이고 아주 큰 진전을 보이고 있어."
아, 그제서야 정말 나를 겨냥해 보낸 메세지라는걸 알았다. 아니 취업 연계 행사도 안갔는데 이렇게 먼저 연락이 오다니! 기쁜 마음에 급히 답장을 보냈다.
"연락줘서 고맙고 답장이 늦어 미안해. UX 디자이너를 구하고 있는거니? 그러면 나 관심 있어! 잡 디스크립션(직무 설명서) 좀 보내줄래?"
"응, UX디자이너 구하는거 맞아. 너랑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
"오 그러면 내가 내 이력서랑 포트폴리오 먼저 보내줄게 읽어볼래?"
"좋아."
그러고 몇분 뒤 바로 또 답장이 왔다.
"이력서랑 포트폴리오 봤는데 아주 훌륭해! 너 시간 될 때 언제든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 우리 회사 주소는 XXX야."
흐음, 연락이 와서 좋긴 좋은데 뭔가 좀 찜찜한 기분이었다. 다른 리쿠르터들과는 다르게 연락하는 방식도 뭔가 프로페셔널하지 않아서 이거 혹시 사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 이름을 찾아보니 있긴 있는 회사였다. 아주 조잡했지만 회사 홈페이지도 있긴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뭐하는 회사인지 감도 안잡혔다. 심지어 나에게 연락해온 사장님은 연세가 꽤 많으신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이런 가상현실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신다고? 호기심에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아니 그런데 무려 캐나다 출신 체스 챔피언이 아닌가!
오 뭐지? 천재가 운영하는 회사인건가? 궁금증이 치솟았다. 리드 UX디자이너라는 분도 검색해봤는데 인상도 좋고 예쁘신 한국 분이셔서 찜찜했던 마음이 좀 누그러들었다. 자세한건 이분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싶었다. 그래서 일단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회사로 찾아가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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