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던 회사는 IT회사가 아니라 지리학/지질학 도메인 특화 회사였다. 그래서 회사의 대부분은 그쪽 관련학과를 전공해서 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회사 차원에서도 GIS 엔지니어에게 제공하는것들이 훨씬 많았다.
우리 회사에는 도서관이 꽤 크게 있었다. 처음 면접보러 갔을 때부터 도서관이 한쪽에 크게 있어서 감탄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막상 대부분의 책들은 다 GIS 관련 책들이었다. 개발이나 컴퓨터 공학 관련 책들은 거의 없어서 내가 보고 싶어하던 책은 도서관에 구매 요청을 해서 봐야만 하는 식이었다.
매년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도 참 많았는데 대부분은 GIS 관련이었다. 나는 개발 관련 교육을 듣고 싶었는데 거의 전무했고, 그나마 있는 파이썬 교육도 GIS에 특화된 것들이었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데도 혜택을 훨씬 못누리는 느낌이 들어 조금 서글펐다.
필수로 들어야되는 교육들도 GIS 엔지니어를 겨냥한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그들이 필드에 나갈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들을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와 같은 안전 관련 교육들이 많았다. 더운날 필드에 나가 일을 하다가 일사병이 발생했을 때, 필드에 가는 중에 교통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필드에서 다른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등등 대부분 개발팀과는 상관없는 교육이었지만, 회사 정책상 개발팀인 우리도 꼭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필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이렇게 많구나, 정말 힘들겠다와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나와 크게 관련이 없다보니 곧 지루해져 딴짓을 하게 되곤 했다.
강의 중간에 소규모로 팀을 나누어 서너명의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는 시간들도 꽤 많았는데, 그들이 자기의 경험들을 신나게 얘기하는 동안 나는 "개발자라 필드에 나간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와 같은 답변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얘기를 나누며 서로 금방 친해지곤 했는데, 그안에서 나는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어 또 조금 외로워지곤 했다.
물론 장점도 많긴 했다. 대부분이 필드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이다보니, 회사에서 직원들의 안전과 정신 건강을 유독 더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절대 과하게 일하지 말것, 무리하지 말것, 조금이라도 우울하거나 번아웃이 오거나 하는 등 정신적으로 힘들다면 바로 상담을 요청할 것 등 직원들을 위하는 느낌이 물씬 드는 말들을 많이 해서 괜히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다.
또 GIS 엔지니어들은 대체적으로 개발자들보다 성격이 활발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회사 분위기도 활기차고 밝은 편이었고 직원들끼리의 유대감도 깊은 느낌이었다. 언젠가 일이 있어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길에 엘레베이터에서 모르는 회사 사람(GIS 엔지니어)을 만났는데, 내게 스스럼없이 "널 처음보는것 같은데 최근에 입사했니?"라고 물어왔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엘레베이터가 1층에 다다르자 "나는 6층에서 일하니까 6층에 오게 되면 인사해!"라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새삼 참 인싸인 사람들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팀도 PM들은 다 GIS 출신이었는데, 과묵한 개발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밝고 활발하고 말이 많았다. 덕분에 가끔 친목 목적으로 미팅을 할 때 그들이 분위기를 많이 끌어올려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곤 했다.
지금은 이직을 해서 IT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일한지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지만, 아직까진 솔직히 말하자면 저번 회사만큼의 따뜻함은 잘 찾아볼 수 없는 느낌이다. 다들 말이 별로 없고, 말투도 대체적으로 딱딱하고, 좀 더 개인적인 느낌이랄까.
물론 팀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지금 팀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가 조금 더 힘든 느낌이다. 그래서 문득 예전 회사의 그 온기가 살짝 그리워질 때도 있다.
역시 어느 회사나 다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 중 장점이 내게 좀 더 와닿는 회사로 찾아가다보면 조금씩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되겠지.
'개발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정했던 마르코 (0) | 2022.01.26 |
---|---|
인턴들로 돌아가는 회사 (0) | 2022.01.18 |
조급함은 나를 병들게 한다 (0) | 2022.01.04 |
개발자로서의 나의 첫 캐나다 회사, 그 첫 출근 (2) | 2022.01.03 |
어쩌다보니 개발자 14: 마지막 이야기 (0) | 2021.12.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