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비빅 삐비비빅
알람 소리가 울린다. 아침 7시.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곧바로 아침 운동을 한시간 한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와서 커피 한 잔 내려 자리에 앉아 그날의 공부를 시작한다.
시작은 무조건 알고리즘 문제부터. LeetCode(영어로 된 알고리즘 문제 사이트)에서 랜덤 문제 하나씩을 풀며 머리를 깨운다. 보통 30분, 어려운 문제는 풀이까지 보다보면 한시간이 훌쩍 지난다.
잠시 쉬었다가 바로 전공 공부를 한다. 전공책을 읽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 찾아 보거나, 미국 유명 대학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보기도 한다. 초반에는 자바를 비롯한 언어공부와 자료구조 및 알고리즘 같은걸 주로 공부했고, 점차 디자인 패턴, OS,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등의 과목들로 옮겨갔다.
React, Node.js, Spring 등 잘나가는 프론트엔드 및 백엔드 프레임워크도 배워나간다. 배운걸 응용해서 작게나마 개인 프로젝트를 틈틈이 해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Git과 리눅스 커맨드에도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그렇게 비슷비슷한 일상이 1년간 반복되었다. 매일 열심히 한건 아니었다. 때로는 그저 이유없이 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과 여행도 다니며, 술도 꼬박꼬박 잘 챙겨마셨다.
그래도 1년이 지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1년 전, 다시 개발을 해보기로 마음 먹고 개발 공부를 시작할땐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전공 지식들은 까먹은지 오래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 남편의 추천으로 자바 공부부터 쭉 했다. 자료구조, 알고리즘 같은 전공 과목들도 함께 병행했다. 오랜만에 보니 기억이 어렴풋이…나기는 무슨 마치 처음보는 것들처럼 온통 낯설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계획도 짜고 하루하루 하기로 한 공부를 해나가다보니, 그전의 회사를 다닐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재밌고 뿌듯했다. 조금씩이나마 배우고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1년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내가 더 모르는게 많다는 사실만 깨달아가는것 같았다. 혼자 하려다보니 하기 싫어질때도 많았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두려울때도 많았다. 이렇게 해서 취업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겠고, 내가 남들과 비교했을때 어느정도 수준인건지 감도 안왔다. 공부한지 7개월쯤 지났을때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었는데 처참하게 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1년쯤 지나니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슬슬 이력서를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링크드인도 다시 재정비했다.
구인 사이트를 들어가 Junior Software Engineer(신입 개발자)로 검색해서 쭉 보기 시작했다. 음, 근데 생각보다 신입 개발자를 구하는 회사가 별로 없었다. 요즘 신입들 구하는 시기가 아닌가? 뭐, 곧 일자리들이 올라오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구인 사이트를 뒤적거리던 어느 날, 괜찮아 보이는 회사의 신입 개발자 일자리 공고가 올라왔다. 남편과 얘기해본 끝에 지원해봐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한 번 이력서를 검토하고 떨리는 손길로 이력서를 첨부한 후 지원 버튼을 눌렀다. 그날부터 열심히 면접 질문도 찾아보고 코딩 테스트 후기도 찾아보며 회사로부터 답변이 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매일 메일함을 들락날락했지만 모두 광고 메일일뿐, 회사의 답변은 없었다. 왜 답변이 안올까, 바쁜가... 마침 구인 사이트에 또다른 괜찮아 보이는 일자리가 올라왔길래 그곳에도 지원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두 곳 다 연락이 없었다.
느낌이 싸했다. 지원을 하면 당연히 그 지원 결과에 대한 연락이 올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친한 언니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신입 개발자를 뽑는다길래 또 얼른 지원했다. 이번에는 언니의 레퍼런스(추천서)도 있으니 분명히 연락이 올거라고 믿었다.
며칠후 언니에게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신입 개발자 공고에 수백명이 지원을 해서 인사팀이 정신이 하나도 없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신입 개발자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고? 이 시골같은 밴쿠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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