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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에 대한 단상

어쩌다보니 개발자 1: 정신 차려보니 컴공에 와있었다

by 개발자 민디 2021. 11. 24.

 

어렸을 적 꿈은 소설가였다. 밖에 나가 놀기보다는 한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또 읽는 내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쟤는 뭐가 돼도 되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뭐가 되긴 됐다. 그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개발자"가.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게임에 빠져들게 되며 책을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렸다. 책을 읽느라 자는것도 잊었던 아이는, 엄마 몰래 새벽에 일어나 게임을 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아이로 진화했다.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한 구석에 게임 맵 분석, 게임 스킬 분석을 빼곡히 적어놓고 어떻게 하면 게임을 잘할 수 있을지 골똘히 연구하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래도 어렸을때 책을 많이 읽어둔 덕분인지 늘 언어 영역 점수는 상위권이었다. 반면 수학 점수는 변변치 않았다. 그러니 2학년이 되어 이과와 문과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을때 마땅히 문과를 갔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과가 멋있어보였다. 무엇보다 70-80%의 애들이 문과로 가는데 비해 이과로 가는 애들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특별해보였다.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었을까. 늘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는 애들이 참 멋있어보였다. 뭔가 똑똑해보이고 이성적일것만 같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침 수학은 잘 못했지만 그래도 과학은 제법 재밌어했기에 천문학과나 생명과학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천문학과는 서울권 대학 중에 연세대밖에 없다는걸 알게 되어 잽싸게 꿈을 접고, 생명과학을 가야지 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멋지게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가슴이 설렜다.

 

변명을 하자는건 아니지만 내가 수능을 보던 그 해 황우석 박사때문에 생명과학과의 컷트라인이 폭등했다. 고3까지도 정신 못차리고 독서실 밑에 있던 피씨방에 출근 도장을 찍던 내 점수로는 턱도 없었다. 그렇다고 재수까지 하고 싶진 않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자연과학대를 지나 그 밑에 있는 공대로 눈길을 돌렸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당시에는 자연과학대보다 공대가 컷트라인이 더 낮았다.) 전기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 그 어느하나 관심이 가지 않았기에 점점 참담해지던 기분이던 그 때, 낯익은 단어를 발견했다. 바로 "컴퓨터"공학과.

 

아니 컴퓨터? 나 또 컴퓨터 게임 좋아하잖아. 그래도 게임이라면 좀 잘 할줄 알지. 정확히 뭐하는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공대보단 괜찮아 보이는데? 등등...과 같은 이유로 바로 결정해버렸다. 컴퓨터공학과. 다시금 설레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지만 잘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 생활은,

너무 좋았다.

아니 술마시면서 노는게 이렇게 재밌는 일이었다니. 공대다보니 남자애들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술자리도 많았다. 오티며 엠티며 정신없이 따라다니며 매일같이 술을 들이부었다. 일렉 기타를 배워 고등학생때부터 꿈꾸던 밴드 생활도 시작했다. 술마시며 좋아하는 밴드 얘기하며 같은 취미의 사람들과 낄낄대는 순간순간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술자리는 세상 행복했지만 수업을 들을땐 세상 절망적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과목들 속에서 허우적대기 바빴다. C나 C++는 뭐며, 자료구조니 알고리즘이니 생소한 것들 투성이었다. 수업을 들을때마다 점점 골치가 아파졌다. 내가 생각했던 공부는 이런게 아니었는데. 나는 게임만 좋아했지, 컴퓨터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심지어 컴퓨터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단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학점은 점점 나락으로 향해갔다. 학창 시절, 놀기는 했으나 그래도 나름 반에서 2~3등은 해왔던지라, A는 커녕 B, C, 심지어 D까지 적혀있는 성적표를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1학기에는 희망을 놓지 않으셨던 부모님도 2학기 성적표를 받아든 순간 어두워진 표정을 숨기지 못하셨다.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었어! 마음 속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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