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휴학을 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휴학을 하고 이 길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제대로 고민해보기로 했다. 마침 고모가 미국에 살고 계셔서 고모댁으로 1년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로 했다.
말은 어학연수였지만 내겐 나름대로의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밴드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기타에 푹 빠지게 된 후, 나는 음악을 전공해야겠다 내심 결심했던 것이다...! 기타 치면서 작곡도 하고, 멋진 영화 음악같은거 만들면 재밌겠다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어학원으로 가지만, 6개월 후에는 동네의 커뮤니티 컬리지에 입학해서 음악 공부를 해야겠다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도 만나고, 어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고모 따라 한인 교회도 나가서 교회 찬양대에서 기타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그 오빠는 찬양대에서 드럼을 치던 오빠였다. 드럼도 잘치는데 기타도 잘치고 심지어 피아노도 잘쳤다. 한번은 교회에 있던 피아노로 류이치 사카모토 곡을 연주하는데 진심 넋 놓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알고보니 주전공은 바이올린에 버클리 음대를 나왔다고 했다. 게다가 지금은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라고 했다. 아니 이건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삶이 아닌가. 내가 꿈꾸던 삶을 이렇게 완벽하게 현실화 해놓은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정말 너무 멋있어서 역시 나도 음악을 전공해서 저 오빠처럼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저 오빠는 바이올린을 12살때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들은것 같지만, 뭐 나도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되지! 열심히 해서 세계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가 되어서 엄청 유명해져야지!! 돈도 많이 벌어야지!!!
그 꿈이 파스스 사그라드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자신의 고민과 그에 대한 기도 주제를 말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오빠가 그랬던 것이다. 이 불안정한 삶이 너무 힘들다고.
언제 일이 생길지. 일이 생긴다면 그 일감을 어떻게 따올지. 일을 받아오더라도 생각만큼 작업이 잘 안되어서 힘들때도 많고, 결과물이 좋아도 영화가 잘 안되면 거의 빛을 받지 못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의 작업을 끝내고나면 다시 또 언제 일이 생길지. 이런 기약없는 기다림이 힘들다고 했다.
머리가 띵했다. 아니 이 오빠는 드럼도 잘치고 기타도 잘치고 피아노도 잘치는데? 그런데 바이올린은 더 잘하고 버클리 음대까지 나왔는데?
내게 이상처럼 보이던 사람이, 그 엄청난 능력치를 가지고도 일이 불안정해서 힘들다 말하는 모습에, '그럼 나는...?'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나는, 뭣도 없는 나는, 저 오빠처럼 되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겨우겨우 그에 다다른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라 그제야 시작이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그 모든걸 감수할 자신이 있나?
뜨거웠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기타치는게 좋지만 하루에 한두시간이면 족했다. 그걸 넘어 죽어라 노력한다해도, 노력에 대한 보상조차 보장되지 않은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저런 능력자도 힘들어하는, 그 좁은 문을 향해 내 모든걸 걸 용기가 없었다.
딱 그정도였다. 음악에 대한 나의 갈망은. 그리고 나의 이상이 무너지는 순간 깊이 잠들어있던 현실감이 고개를 처들었다. 그리고,
우습지만 다시 학과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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